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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 스피크, 그날의 아픔에 대해 전하고 싶은 말

by 젯텐 2023.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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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 스피크

도깨비 할머니의 영어 공부

옥분은 거의 날마다 구청에 찾아가 민원을 접수합니다. 공무원들 사이에서 유명한 할머니입니다. 이곳의 시장에는 재개발을 추진하기 위한 계획이 있으나 시장 상인들은 이를 반대합니다. 이에 민재는 구청이 건설 업체에 재개발 중지 명령을 내리고 건설 업체와의 소송에서 구청이 지면 된다는 의견을 냅니다. 구청장은 이를 따르기로 합니다. 한편 옥분은 꾸준히 민원 접수를 하는 만큼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러다 옥분은 명진 구청으로 발령받은 민재가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됩니다. 옥분은 민재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조르게 됩니다. 민재는 20개의 단어 시험을 쳐서 80점 이상이 되면 가르쳐 주겠다고 합니다. 다음날, 구청 도서관에서 시험을 치게 되었습니다. 아쉽게 옥분은 75점을 맞게 되어 영어 과외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이후 동생 영재가 골목길로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걱정된 민재는 동생의 뒤를 밟았지만, 알고 보니 옥분이 동생의 밥을 챙겨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민재는 그 모습을 보고 옥분에게 영어 과외를 해주기로 합니다. 민재의 영어 과외를 통해 옥분은 외국인과 가벼운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큼 실력이 향상되었습니다. 하루는 민재가 옥분에게 영어를 왜 배우고 싶어 하는지를 묻게 되었습니다. 옥분은 일제강점기 시절 동생이 미국으로 가게 되었고 얘기를 주고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LA에 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전화를 원치 않았고 만나기 싫다며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민재는 옥분이 상처받을까 봐 말하지 못하고 영어 과외도 못 한다며 변명합니다. 그리고 영재에게는 옥분에게 밥을 얻어먹지 말고 백반집 가서 밥을 먹으라고 합니다.

미 하원 청문회에서 영어로 연설하는 옥분 할머니

옥분은 민재를 보러 구청에 왔다가 건설 업체에 내린 명령이 다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옥분은 분노하며 민재에게 다가가 소송 때 쓰라고 준 자료들은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민재는 옆자리 여직원에게 물어봤지만 이미 파쇄한 뒤였습니다. 옥분과 민재는 감정이 격해졌고 결국 사이가 틀어지게 됩니다. 하필이면 영재가 이 모든 걸 보게 되었고 집에서 민재에게 할머니한테 그렇게 했으면 안 됐다고 말합니다. 이후 옥분은 가게를 임시휴업하고 친구 정심의 병문안을 갔습니다. 정심은 영어를 배워서 위안부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고 싶었지만, 치매에 걸려 못하게 되었습니다. 옥분은 정심을 대신하여 미 하원 청문회에 참석하기로 다짐합니다. 이 사실이 뉴스에 보도되면서 시장 상인들과 구청 직원들은 놀라게 됩니다. 민재도 이 뉴스를 보고 옥분을 찾아가 사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날 위안부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사진도 보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민재는 다시 옥분에게 영어 과외를 해주게 됩니다. 시장 상인들의 응원과 위로를 받고 옥분은 워싱턴으로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이 되지 않았던 옥분이 자격이 없다고 이의제기하는 바람에 청문회가 미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민재는 서명받으러 다니면서 위안부 피해자에 등록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하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자꾸만 불리해져 민재는 증거를 찾기 시작합니다. 옥분의 연설 차례가 되었지만 일본 측 의원들이 반발하는 바람에 말이 막히게 되었습니다. 그때 민재가 청문회에 등장하게 되었고 증거로 그 시절 사진을 제출하게 됩니다. 그리고 옥분은 마음을 굳게 먹고 자신의 배에 있는 흉터들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한국말로 연설하다 이어 영어로 연설하게 됩니다. 연설이 끝나자, 일본 측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박수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헤어진 동생이 옥분을 찾아오게 되어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옥분은 시장 상인들과 구청 직원들과도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민재도 진급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이후 옥분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날의 아픔

아이 캔 스피크는 아픈 역사를 다룬 영화입니다. 일본의 끔찍한 만행들로 인해 지금까지도 고통받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런 일을 겪어야 했던 현실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이 슬픈 역사가 절대 잊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일본을 보고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들에게는 돈이 아닌 이를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가 필요합니다. 하루빨리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제대로 된 사과를 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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